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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6 [20:16]
전쟁과 기후위기, 그리고 원전의 그림자 — 한반도가 직면한 복합 위기자포리자에서 시작된 경고, ‘핵의 안전’은 전쟁 앞에 무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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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포 원자력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가 잊고 있던 공포를 되살렸다.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단순한 전장이 아니라, 냉각수를 잃은 거대한 원자로였다. 유럽 최대 규모의 자포리자 원전이 전력망에서 고립되고, 디젤 발전기만으로 냉각을 유지하는 장면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 얼마나 불안정한 전제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력망이 단절되면, 고작 몇 시간 안에 노심 온도가 급상승한다. IAEA는 “세계가 또 다른 체르노빌을 향해 걷고 있다”고 경고했고, 인류는 전쟁이 곧 핵위기의 문을 여는 시대를 맞았다.
기후위기 또한 원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폭염, 가뭄, 태풍은 냉각수 확보를 어렵게 하고, 해수 온도가 높아질수록 발전 효율은 떨어진다.
프랑스, 일본, 미국에서도 여름철 원전 가동이 제한된 사례가 늘었다. 냉각수의 온도는 30도를 넘지 않아야 하지만, 바다는 이미 그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다.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달할 때 원전이 멈추는 아이러니—그것이 기후시대의 새로운 현실이다.
전쟁은 그 위기를 증폭시킨다. 러시아군은 전력망과 송전탑을 집중적으로 타격하며, 민간 에너지 인프라를 전쟁의 목표로 삼았다. 자포리자 원전의 송전선이 절단되자, 냉각 펌프가 멈췄고 비상 디젤이 가동됐다.
![]() ▲ 중국은 원자력 발전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현재 동부 해안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해 있습니다. 가동 중인 원자로는 57기에 이르며, 올해에만 11기의 신규 건설 계획이 승인되었습니다. 추가로 30기의 원전 건설이 진행 중입니다. |
그 연료는 단 며칠 분량이었다. 전쟁 중 연료 수송이 막히면, 냉각은 끝이다. 노심이 녹기 시작하면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어간다. 이 ‘전력망의 전쟁’은 결국 기후위기와 맞물려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복합위기로 진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한국에도 거울이 된다. 한국의 원전 대부분은 해안에 위치한다. 고수온, 폭풍, 태풍, 지진—all in one. 2012년 고리 원전의 블랙아웃 사고가 보여줬듯, 한 번의 외부전원 상실은 국가적 위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의 위협은 단순한 정전이 아니다. 드론이 원자로를 향해 날아들고, 해커가 제어시스템을 노린다. 노보보로네시 원전 인근이 드론 폭격을 받은 사건은 ‘핵시설도 더 이상 전장의 예외가 아니다’라는 현실을 확인시켰다.
한국은 이미 여러 취약점을 안고 있다. 송전망이 단일 구조에 가깝고, 비상전원·냉각수 체계는 장기 정전에 취약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과 폭풍 해일은 냉각수 흡입구를 마비시킬 가능성이 크다. 만약 전력망이 붕괴되고 태풍이 겹친다면, 부산과 울진의 해안 원전은 자포리자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원전 주변 지역의 대피 계획, 의료 대응, 요오드화칼륨 배포 등은 여전히 미비하다. ‘한국의 원전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문장은 안일한 신화일 뿐이다.
전쟁은 새로운 위협을 던졌다. 저가 드론 한 대가 수조 원짜리 원자로를 마비시킬 수 있고, 사이버 공격 한 번으로 냉각 펌프가 멈출 수 있다.
방사능의 확산은 미사일보다 더 오래, 더 깊게 사람과 토양을 죽인다. 따라서 원전의 ‘물리적 안전’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전력망 복원력(Resilience), 정보보안, 국제 외교, 그리고 시민대응이 함께 작동하는 ‘통합적 안전 체계’가 필요하다.
![]() ▲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동시에 실현하는 프랑스 |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비상전원의 지속운전 능력을 30일 이상으로 확장하고 연료 공급망을 군수 체계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둘째, 다중 경로 송전과 분산 전원을 구축해 블랙스타트(정전 후 재가동)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해수 온도와 수위를 실시간 감시하며 냉각수 관리의 기후 적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드론·사이버 복합공격에 대비해 원전별 ‘하이브리드 방호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무대에서 ‘핵시설 비전투지대화 원칙’을 공식 제안해야 한다. 전쟁 중에도 원전은 결코 공격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규범을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문제는 기술만이 아니다.
전쟁과 기후위기가 겹치는 이 시대에는, 정책과 윤리, 시민의식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원전 주변 지역은 단순한 에너지 생산지가 아니라 ‘위기관리의 최전선’이다.
주민 대피로, 비상통신, 의료체계, 환경감시까지 재설계되어야 한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군, 민간 기업이 분리되어 움직이는 구조로는 복합재난에 대응할 수 없다.
한국은 지금 ‘기후·에너지·안보’라는 세 가지 변수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시험대에 서 있다.
![]() ▲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2011년 5월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에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여 독일의 신속한 원자력 단계적 폐지와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는 메세지를 전했다. © Gordon Welters / Greenpeace |
전쟁의 불씨는 언제든 동북아로 번질 수 있고, 태풍과 폭우는 점점 더 강해진다. 원전의 안전은 더 이상 기술자가 아닌 국민 모두의 생존 문제다. 기후위기와 전쟁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묻는다. “다음 자포리자는 어디인가?”
그 대답은 ‘미래의 준비’에 달려 있다. 재생에너지와 저장 기술로 분산형 전원을 늘리고, 핵시설의 방호를 군사 수준으로 높이며, 국제사회의 핵안보 규범을 재정의해야 한다. 또한 원전 사고 대비 훈련과 주민 보호를 일상화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한 가지 메시지로 귀결된다